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크 왕조 (문단 편집) ==== 여러 내분 ==== 요크 공작 리처드의 장남 에드워드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고, 워릭 백작 '[[킹메이커]]' 리처드 네빌의 지원을 받아 랭커스터파를 몰아붙혔다. 그리고 [[헨리 6세]]와 앙주의 마거릿이 북부에 있는 사이에, '''타우튼 전투'''에서 랭커스터파의 세력을 괴멸시키고 [[에드워드 4세]]로 즉위했다. '''그런데...''' [[에드워드 4세]]가 프랑스 발루아 왕가와의 [[정략결혼]] 대신 부유한 미망인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하고[* 프랑스 발루아 왕가와의 혼인은 리처드 네빌이 추진한 정략결혼이었으나, 에드워드 4세는 자신이 이미 우드빌과 결혼했다며 이를 거절했다. 자신에게 알리지도 않고 결혼한 상태였다는 것에 네빌은 모욕감을 느꼈다.], 네빌 대신 우드빌 가문 사람들을 중용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 번 왕권에 혼란이 왔다. 결국 워릭 백작 리처드는 에드워드 4세를 배신하고 랭커스터파의 영수인 앙주의 마거릿과 손을 잡아 [[1470년]]에 [[헨리 6세]]를 복위시켰다. 하지만 에드워드 4세는 누이의 남편인 [[부르고뉴 공국|부르고뉴]] 공작 용담공 샤를에게 의탁하여 권토중래를 노리고, 결국 샤를로부터 지원군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1471년 다시 잉글랜드에 상륙한 에드워드 4세는 지지자들을 규합하여 런던에 무혈입성했고, '''바넷 전투'''에서 워릭 백작을 전사시키며 승리한 이후, 튜크스베리 전투에서도 [[랭커스터 왕조]]의 마지막 왕자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를 전사시키고 승리했다. 이후 헨리 6세 또한 런던탑에서 사망했는데, 랭커스터 가문의 후계자가 사망하면서 거리낄 것이 없어진 에드워드 4세가 죽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할 때까지의 12년 동안 요크 왕조의 잉글랜드 지배는 흔들리지 않았다. [[1483년]]에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하고 왕위는 에드워드 4세의 어린 아들 [[에드워드 5세]]가 이어받았다. 하지만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이자 에드워드 5세의 섭정이었던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는 형이 원래의 약혼자와 결혼하지 않았기에 두 아들은 [[사생아]]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런던탑에 가두고 스스로 [[리처드 3세]]로 즉위했다.[* 이후 탑에 갇힌 두 왕자들은 실종됐다. 정황상 암살이 유력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